R&D 기획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 요구되는 지식과 역량
AI 시대, 관리한다는 것 - 7편
연구기획팀이라는 이름의 부서가 많은 회사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서가 실제로 하는 일은 회사마다 상당히 다릅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과제 현황을 취합하고, 예산 집행률을 정리하고, 경영진 보고 자료를 만들고, 정부 과제 서류를 챙깁니다. 전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 일이 없으면 조직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일들에는 다른 이름이 더 맞습니다. 연구행정입니다.
같은 이름 아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이 섞여 있고, 이름이 같아서 구분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도 정해지지 않습니다.
지난 편에서 일을 기능 단위로 나눠 보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하나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 다른 일이 같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먼저 구분부터 하겠습니다.
| 연구행정 | 연구기획 | |
|---|---|---|
| 성격 | 이미 정해진 것을 정확하게 처리 |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을 정하는 일 |
| 하는 일 | 현황 취합, 예산 집계, 보고 자료 작성, 서류 기한 관리 | 무엇을 할지 고르고, 어떻게 할지 정하고, 그 판단이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 |
| 기반 | 규정과 절차 | 판단 |
이 시리즈 첫 편에서 나눈 구분과 정확히 같습니다. 앞의 것은 규정으로 처리되는 일이고, 뒤의 것은 판단으로 처리되는 일입니다.
문제는 두 일이 한 부서 안에 있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밀어낸다는 점입니다. 보고 기한은 다음 주에 있고, 방향을 다시 보는 일은 기한이 없습니다. 기한 있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기획팀은 실제로 행정팀이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자리가 크지 않았습니다
지난 편들에서 이야기한 것을 잠깐 다시 짚겠습니다.
목표가 회사 밖에 있던 시절에는 기획의 비중이 작았습니다. 무엇을 만들지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그때 필요한 전문성은 그 분야를 오래 다뤄본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어본 사람이 빨리 풀었고, 그래서 경험이 곧 실력이었습니다.
지금은 목표를 우리가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 고른 것을 열심히 실행하는 것이 가장 큰 손실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실행을 지원하는 자리였는데, 지금은 무엇을 실행할지를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기획은 문서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많은 조직에서 기획의 산출물은 문서입니다. 연초에 전략을 수립해서 보고하고, 그 문서가 확정되면 기획이 끝났다고 봅니다. 그 다음부터는 실행입니다.
그런데 기획은 상태를 관리하는 일입니다.
무엇의 상태냐면,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것 전체입니다. 우리가 정한 전략들, 진행 중인 과제들, 검토 중인 후보들, 보류해 둔 것들. 이것을 통틀어 하나의 묶음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묶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밖에서 계속 흔듭니다. 규제가 바뀌고, 경쟁사가 움직이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원료 시장이 요동칩니다.
안에서도 계속 흔듭니다. 어떤 과제가 예상보다 잘 나오고, 어떤 과제가 막히고, 사람이 나가고, 예산이 줄어듭니다.
기획이 하는 일은 이 변화를 계속 받아서, 지금 조건에서 이 묶음이 여전히 최선의 조합인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조정하는 것입니다.
연초에 한 번 잘 짜는 일이 아니라, 계속 손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획의 산출물은 문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들고 있는 조합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획이 왜 겸업으로 되지 않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실험을 하면서 틈틈이 밖을 보고 조합을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밖을 보는 일은 끊기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세 달 쉬었다가 다시 보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수단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목표를 정하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는 다른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번째 질문에 답하는 것도 기획의 일입니다.
어떤 기술이 필요하다고 정했을 때, 확보하는 방법이 여러 갈래입니다.
| 수단 | 특성 |
|---|---|
| 직접 개발 | 오래 걸리지만 역량이 회사 안에 쌓임. 다음 과제에도 쓸 수 있음 |
| 기술 도입 (License In) | 빠르지만 조건에 묶임 — 지역, 개량 권리, 로열티가 계약서에 달려 있고, 기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안에 생기지 않음 |
| 공동연구 | 비용을 나누지만 지식재산권을 나눠야 하고, 상대 기관 일정에 묶임 |
| Outsourcing | 외부에 맡김 — 핵심 역량이 내부에 남지 않음 |
| Insourcing | 밖에 있던 역량을 안으로 들임 |
| 전략적 투자 · M&A | 한 번에 확보하지만 실사에서 놓친 것이 나중에 드러나고, 인수 후 통합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음 |
이 선택지들을 비교할 수 있어야 기획입니다. 그리고 비교하려면 각각을 알아야 합니다. 계약 조건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실사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나누는지 같은 것들이요.
직접 개발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이 판단을 맡기면, 모든 답이 직접 개발로 나옵니다. 그것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비교 대상이 없어서입니다.
앞선 글에서 부서별로 흩어져 있어서 비교할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자리를 만들어도 비교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누가 무엇에 답합니까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럼 연구팀은 무엇을 합니까.
간단히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방향에 대한 책임은 기획 쪽에 있습니다. CTO와 연구기획이 그것을 정하고, 그 판단에 답합니다. 연구팀은 정해진 것을 수행하고, 그 수행에 답합니다.
이건 연구팀이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가 방향을 바꾸는 일은 R&D에서 대단히 흔하고, 그 신호가 위로 올라가는 통로는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신호를 받아 방향을 다시 정하는 책임은 기획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분이 왜 중요한지, 구분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다음 편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실무자에게 가장 직접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연구기획은 행정이 아닙니다. 취합과 보고는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일이고, 한 자리에 두면 기한 있는 쪽이 이깁니다.
기획의 산출물은 문서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전략과 과제의 조합이 지금 조건에서 여전히 최선인지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는 여러 수단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접 개발만 아는 사람은 직접 개발만 제안합니다.
세 가지를 다 하려면 전업이어야 하고, 배워야 하고, 그 자리에 이름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경력의 갈래 중 하나가 정확히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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