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의 노하우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AI 시대, 관리한다는 것 - 15편
노하우가 있다고들 하는데
"우리 회사는 이 분야에서 경험(노하우)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그 노하우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면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서로 있습니까. 대체로 아닙니다. 시스템에 있습니까. 진행 이력은 있는데 노하우는 아닙니다. 그럼 어디 있습니까.
그 일을 여러 번 해 본 사람 안에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관리의 목표 중 하나로 시스템에 노하우가 쌓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무슨 뜻인지, 쌓인 노하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R&D가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입찰 전에 현장조사를 합니다
큰 공사를 수주하려면 입찰 전에 현장에 가서 조사를 합니다. 지반, 자재 조달, 진입로, 전기와 물, 지역 사회, 그 나라 노동 제도. 여기서 놓친 것이 하나 있으면 몇 달 뒤에 그것이 원가로 돌아옵니다.
그럼 누구를 보냅니까. 대부분 경험 많은 직원으로 팀을 꾸립니다. 그 사람들이 알아서 보고, 잘 봅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릅니다. 지반을 오래 다룬 사람이 가면 지반은 꼼꼼한데 노동 제도는 얕게 봅니다.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이 가면 제도는 잘 보는데 지질에서 놓칩니다.
그리고 본인이 무엇을 안 봤는지는 본인도 모릅니다. 조사를 마치고 "이건 확인 못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항목은, 애초에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항목뿐입니다.
그 사람이 회사를 떠나면 그 눈도 함께 떠납니다.
대신 체크리스트를 보냅니다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프로젝트 유형별, 지역별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조사팀에게 주고 채워 오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체크리스트는 상한이 아니라 하한입니다.
누가 가더라도 그 항목만큼은 확인됩니다. 지반 전문가가 가도 노동 제도 칸이 비어 있으면 그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그 수준의 결과는 나옵니다.
그리고 잘하는 사람은 그 위로 갑니다. 체크리스트에 없는 것을 봅니다. 항목 하나를 확인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더 파고듭니다. 체크리스트는 그것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체크리스트가 없으면 조사팀은 현장에서 "무엇을 봐야 하지"부터 생각합니다. 있으면 그 시간이 사라지고 "이건 왜 이렇지"에 시간을 씁니다. 그게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체크리스트는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판단할 시간을 벌어 줍니다. 답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가 적혀 있을 뿐이고, 답은 여전히 현장에서 사람이 찾습니다.
그리고 하한선이 올라갑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주는 것까지는 많은 회사가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조사를 나갔더니 체크리스트에 없던 것이 나옵니다. 이 지역은 우기가 길어서 공정 계획이 달라져야 한다든가, 인근 공사 때문에 숙련공 확보에 경쟁이 있다든가.
이때 그것을 조사 보고서에만 적고 끝내면, 그 정보는 그 프로젝트에서만 쓰이고 사라집니다.
체크리스트에 반영합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은 그 항목을 처음부터 들고 갑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누군가 하한선 위로 올라가서 발견한 것이, 다음 사람의 하한선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또 그 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것이 다시 하한선이 됩니다.
이 과정이 몇 년 반복되면, 그 체크리스트 한 장에 회사가 지난 20년간 현장에서 놓쳐서 데인 것들이 전부 들어가 있게 됩니다.
이것이 기업 차원의 노하우입니다. 어느 개인의 머릿속이 아니라 조직이 들고 있는 것이고, 사람이 나가도 남습니다.
갱신되지 않으면 형식이 됩니다
그래서 이 방식의 핵심은 체크리스트 자체가 아니라 갱신 경로입니다.
한 번 잘 만들어 놓고 몇 년 그대로 두면 현실과 안 맞는 항목이 늘어납니다. 그러면 조사팀은 습관적으로 체크만 하고 넘깁니다. 채워져 있는데 의미가 없어지고, 정말 중요한 발견은 체크리스트 밖에 남습니다.
새로 알게 된 것이 체크리스트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별도로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과정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 회사에서는 무엇입니까
이제 R&D로 돌아오겠습니다.
신규 과제를 검토할 때 시장 규모는 어떻게 보고, 경쟁 상황은 어디까지 파악하고, 우리 역량으로 가능한지는 무엇으로 판단하고, 규제 요건은 어디를 확인합니까.
위탁 기관을 고를 때 설비와 인력은 어떻게 확인하고, 과거 수행 이력은 어디까지 따지고, 계약에서 어떤 조건을 조심해야 합니까.
기술 도입 계약에서 사용 지역과 기간, 개량 기술의 권리 귀속, 로열티 산정 방식, 독점 여부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부분 그것을 여러 번 해 본 사람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바쁘면 대충 넘어갑니다. 그 사람이 나가면 다음 사람이 처음부터 데어 가며 배웁니다.
회사는 같은 수업료를 두 번 냅니다.
시작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거창한 체계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장 최근에 그 일을 한 사람에게 "이번에 무엇을 확인했습니까"를 물어서 적는 것부터입니다. 다음 사람이 그것을 들고 가서, 새로 확인한 것을 덧붙입니다.
처음 체크리스트는 엉성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세 번만 돌면 쓸 만해지고, 열 번 돌면 그 회사에서 가장 값진 문서 중 하나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체크리스트가 있으면 사람만 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스템도 일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가 정의되어 있으면, 그중 상당 부분은 사람이 직접 찾지 않아도 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정의되어 있지 않은 회사에서는 시스템도 할 일이 없습니다.
요즘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알아서 정리해 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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