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하나는 다 기록되는데, 회사의 결정은 왜 안 남습니까
AI 시대, 관리한다는 것 - 12편
문서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회의록은 대체로 잘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3년 전 회의록을 열어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OO 과제 추진 방향 논의. 각 부서 의견 청취 후 A안으로 결정."
여기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B안과 C안은 무엇이었는지, A안이 왜 이겼는지, 그때 무엇을 걱정했는지, 무엇을 확실하다고 봤는지.
결정은 기록되었는데 판단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편에서 정보가 모이고 검토가 이루어지는 데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그 다음, 판단하는 자리와 그것을 남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에서 나온 신호도 같은 문으로 들어옵니다
판단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만 정리하겠습니다.
지난 편에서는 밖에서 오는 신호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판단이 필요한 상황은 안에서도 생깁니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왔고, 위탁 기관 일정이 밀렸고, 핵심 인력이 나갔고,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런 것들은 대체로 다른 경로로 처리됩니다. 밖에서 온 정보는 기획 쪽에서 보고, 안에서 생긴 문제는 과제 회의에서 이슈나 리스크로 다룹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양식으로요.
저희는 이 둘을 같은 문으로 들어오게 합니다. 둘 다 결국 같은 것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할 것인가, 바꿀 것인가, 접을 것인가.
원인이 다를 뿐 결론을 내는 방식은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다루면 밖의 변화와 안의 상황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가 그때 보입니다.
왜 기록되지 않을까요
이제 본론입니다.
첫째, 회의록은 판단을 담는 문서가 아닙니다.
회의록의 목적은 그 자리에서 오간 것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판단은 발언의 합이 아닙니다. 결정권자가 "그럼 A안으로 갑시다"라고 할 때, 그 한마디 뒤에 있는 판단은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말한 것을 적는 문서로는 판단한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둘째, 결정한 사람은 적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지금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3년 뒤에는 본인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결과를 알고 난 뒤의 기억은 다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잘된 일은 "확신이 있었다"가 되고, 잘 안 된 일은 "그때도 좀 걸렸었다"가 됩니다.
셋째, 기각한 안은 적을 자리가 없습니다.
문서 양식이 채택된 안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하기로 했고, 어떻게 할 것이고, 얼마가 들고, 언제까지 하는지요. 검토했다가 접은 안이 들어갈 칸이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놓고 두 시간을 논의했어도 남는 것은 이긴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위의 세 가지는 양식을 고치면 상당 부분 해결됩니다. 그런데 양식을 고쳐도 안 적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적을수록 나중에 검증 대상이 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특정한 사람이나 부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저희를 포함해 대부분의 조직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의사결정은 원래 조직의 역량을 모아서 내리는 것입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관련 부서의 검토를 받고, 여러 대안을 비교하고, 각 안이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 따지고, 그러고 나서 결론이 나옵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있으면 그 결정은 조직의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남는 것은 결재선에 이름을 올린 사람뿐입니다. 어떤 정보를 봤는지, 누가 무엇을 검토했는지, 어떤 대안이 있었는지가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결과가 나빴을 때 물어볼 대상도 그 사람 하나입니다.
과정이 없으니 사람만 남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겪어본 조직에서는 다들 아주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결정하는 자리를 피합니다. 애매한 것은 위로 올립니다. 위원회를 만들어 여럿이 나눠 갖습니다. 굳이 결정해야 한다면 확실한 것만 결정합니다. 새로운 시도는 누가 하자고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책임 회피이고, 폭탄 돌리기입니다.
이 표현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만큼 정확한 말이 없어서입니다. 실제로 폭탄처럼 돌고 있고, 다들 자기 손에 있을 때 터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폭탄이 도는 이유는 사람들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폭탄이기 때문입니다. 과정이 남지 않는 구조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혼자 결과를 떠안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피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회피할 만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회피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문화 개선 운동으로 풀려는 시도를 여러 번 봤습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자,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자, 도전을 장려하자. 방향은 옳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선언으로는 셈법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남는가입니다. 어떤 정보를 근거로 삼았는지, 누구에게 검토를 요청했고 무슨 답이 왔는지, 어떤 대안들을 비교했는지, 무엇을 전제로 삼았는지. 이것들이 남아 있으면 그 결정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직의 것이 됩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분명히 하겠습니다. 과정이 남으면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 구분 | 과정이 없을 때 | 과정이 남을 때 |
|---|---|---|
| 묻는 것 | 결과 | 과정 |
| 질문 | 왜 실패했는가 | 밟아야 할 절차를 밟았는가 |
| 통제 가능성 | 없음 (결과는 통제 불가) | 있음 (과정은 통제 가능) |
| 결과 | 결정을 피함 | 감당할 수 있으므로 피하지 않음 |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책임 구분이 여기서 다시 필요해집니다. 방향이 틀린 것과 전제가 무너진 것과 실행이 부실한 것이 구분되어 다뤄진다면, 자세히 적는 것은 위험이 아니라 보호가 됩니다. 기록과 책임 구분은 한 쌍입니다. 하나만 하면 둘 다 안 됩니다.
회의록과 결정 기록은 다릅니다
회의록은 말한 것을 적고, 결정 기록은 판단한 것을 적습니다. 둘은 다른 문서이고, 둘 다 필요합니다.
결정 기록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 항목 | 내용 |
|---|---|
| 결정 사항 | 무엇을 결정했는가 |
| 비교 대안 | 어떤 안들을 놓고 비교했는가 |
| 선택 근거 | 왜 이것을 골랐는가 |
| 전제 | 무엇을 전제로 삼았는가 |
| 불확실성 | 무엇이 확실하지 않았는가 |
| 결정 주체 | 누가 언제 결정했는가 |
이 중 "불확실성"이 실무적으로 특히 유용합니다. 결정할 때 걸렸던 부분,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을 남겨 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몰랐던 것"과 "알고도 감수한 것"이 구분됩니다. 그리고 어디부터 봐야 할지도 분명해집니다.
기각한 안을 반드시 적습니다
이 편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채택한 안만 남기면 우리가 무엇을 고민했는지가 통째로 사라집니다.
3년 뒤 누군가 B안 같은 제안을 들고 옵니다. 그때 확인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예전에 이걸 검토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왜 안 했는가. 그 이유가 지금도 유효한가.
기각안이 남아 있으면 답이 나옵니다. 그때 B안을 접은 이유가 원가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원료 단가가 절반이 되었다면, B안은 지금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없으면 두 가지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예전에 접은 것을 모른 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거나, "그거 예전에 안 됐던 거 아니냐"는 흐릿한 기억으로 다시 접힙니다. 둘 다 나쁩니다.
그래서 결정 기록에 기각안을 필수 항목으로 둡니다.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회의에서 이미 논의한 내용이고, 적을 칸이 없어서 안 적었을 뿐입니다.
판단이 바뀌면 고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판단이 바뀝니다. 이때 기존 기록을 고치면 안 됩니다. 원래 기록은 그대로 두고, 새 기록을 만들어 이어 붙입니다.
고쳐 버리면 지금의 결론만 남고, 회사는 자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잊습니다. A에서 B로 왜 바뀌었는지가 사실은 A와 B 각각보다 더 중요한 정보입니다. 무엇이 달라져서 판단이 뒤집혔는지가 거기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어져 있으면 줄기가 보입니다. 나중에 온 사람이 그것을 따라가면서 회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잘못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궤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은 혼자 서 있지 않습니다.
결정 기록에 전제가 적혀 있고, 그 전제는 감시 대상입니다. 그럼 그 전제가 실제로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 결정 하나만 다시 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정에 따라 시작된 과제가 있고, 그 과제가 속한 전략이 있고, 그 전략을 근거로 내려진 다른 결정들이 있습니다.
하나가 흔들리면 어디까지 흔들리는가.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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