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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InsightERP·SCM 도입 이후에도 시스템화되지 않은 R&D 업무 영역
AI 시대, 관리한다는 것 15 / 45

ERP·SCM 도입 이후에도 시스템화되지 않은 R&D 업무 영역

AI 시대, 관리한다는 것 - 1편

지난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이 나갈 때 보고서와 예산 내역과 결재 이력은 남는데, 왜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와 무엇을 검토하다 접었는지는 함께 나간다고요.
그 글을 쓰면서 남는 것들의 목록을 다시 봤습니다. 보고서, 예산, 결재.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전부 이미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함께 나가는 것들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전부 시스템 밖에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시스템에 적지 않은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담고 있는 것과 담지 못하는 것 사이에 이렇게 뚜렷한 경계가 있다면, 그 경계가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는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비싼 시스템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기업에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간 시스템은 ERP입니다. 제조업이라면 여기에 SCM이 붙고, 연구소가 있다면 전자연구노트나 PLM이 더해집니다.

이 시스템들이 다루는 것을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 전표를 끊고, 재고를 차감하고, 발주를 내고, 원가를 집계하고, 급여를 계산하고, 결재를 태우고, 마감을 합니다.

전부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들이 틀리면 회사가 즉시 흔들립니다.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 이 일들을 정확하게 처리해 주는 것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만 정확히 짚어두려 합니다. 이 일들은 왜 발생합니까.

거래는 활동이 아니라, 기업 활동의 부산물입니다

원료를 구매하는 일은 왜 생깁니까.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위탁시험 비용을 집행하는 일은 왜 생깁니까. 개발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광고비가 나가는 일은 왜 생깁니까. 마케팅을 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원의 급여가 계산되는 것은 왜입니까. 그 사람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스템으로 열심히 관리하고 있는 그 항목들은, 기업 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기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활동이 원인이고 거래는 결과입니다. 이런 일들을 묶어 거래 처리(Transaction) 업무라고 부르겠습니다.

거래 처리 업무의 성격은 명확합니다. 정해진 규정과 규칙에 따라, 틀리지 않게 처리하는 것. 여기에는 창의성이 필요 없고, 필요해서도 안 됩니다. 회계 처리를 창의적으로 하면 그건 사고입니다.

그림자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림자를 정확하게 관리하는 일은 필요하고 가치 있습니다. 다만 그림자를 관리한다고 해서 몸통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업무를 네 개의 층으로 나눠 보면

그렇다면 몸통은 무엇입니까.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성격에 따라 네 층으로 나눠 보겠습니다.

하는 일 시스템화 여부
① 정보 수집 시장·경쟁사·규제·기술 동향 파악 시스템 밖
② 계획 방향 결정, 자원 배분, 전략·프로젝트 기획 시스템 밖
③ 실행 수행, 일정·자원 관리, 문제 조정 시스템 밖
④ 거래 처리 구매·비용·급여·결재를 규정대로 처리 시스템 안 (ERP 등)

이렇게 놓고 보면 방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선명해집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시스템에 들인 자원의 대부분은 넷째 층에 들어갔습니다. 위의 세 층은 대체로 시스템 밖에 있습니다.

위 세 층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시스템 밖에 있다는 것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있습니다.

세 가지 안 중에 하나를 골랐다면, 고른 안은 실행 계획으로 남고 나머지 둘은 그냥 사라집니다. 사람이 나갈 때 함께 나가는 것들이 전부 이 세 층에 있는 것들입니다. 넷째 층은 사람이 나가도 남습니다. 이미 시스템에 있으니까요.

왜 아래 한 층만 시스템이 되었을까요

이건 누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조건 거래 처리 (④) 위 세 층 (①②③)
정답 유무 있음 (회계 기준, 세법, 사규) 없음 (정해진 답이 있으면 R&D가 아님)
오류 시 영향 즉시 (세무조사, 감사 지적, 결산 불일치) 몇 년 뒤에야 드러남
표준화 가능성 높음 (업종 불문 회계는 회계) 낮음 (회사마다 다름)

정답이 없고, 틀려도 당장은 조용하고, 회사마다 다른 일. 시스템으로 만들기 가장 어려운 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뒤로 밀렸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실체는 그 위쪽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 뒤로 밀린 영역이 기업 활동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 어느 시장에 들어갈 것인가. 이 기술을 직접 할 것인가 사 올 것인가. 저 회사와 손잡을 것인가.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것인가 접을 것인가.

이런 일에는 규정이 없습니다. 판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들이 모여서 회사의 방향이 되고, 그 방향의 결과가 몇 년 뒤 실적으로 나타납니다.

세미나 자료를 정리하면서 이 영역을 "무형의 업무"라고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전략, 프로젝트, 영업, M&A, 신시장 개척처럼 형태가 잡히지 않는 일들입니다. 형태가 없으니 시스템에 담기 어렵고, 담기지 않으니 사람 안에만 남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나갑니다.

정리하면

이 글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간 시스템은, 기업 활동의 부산물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 부산물은 정확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그 일에 자원을 쓴 것은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다 갖추었다고 해서 "우리 회사 업무가 시스템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네 개 층 중 한 개 층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층은 지금도 파워포인트와 엑셀과 사람 머릿속에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그럼 왜 지금까지 그 세 층에 대한 시스템은 이야기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야기는 되었는데 왜 잘 안 되었을까.
다음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좋은 시스템을 도입했는데도 관리 수준이 그대로인 경우가 왜 그렇게 많은지에 대해서요.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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