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과 회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AI 시대, 관리한다는 것 - 0편
얼마 전 CTO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3년 차가 나가면 아깝다고 했는데, 요즘은 3년 차가 아직 있는 게 신기하다고요.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분들 표정은 웃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 분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힘들게 가르쳐 놓으면 그때부터 시장 가치가 올라가서, 결국 우리가 다른 회사 사람을 키워주는 셈이 된다고요.
특정 회사의 인사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가 25년간 여러 기업의 R&D 관리 체계를 만들면서 만난 거의 모든 회사가 지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건이 바뀐 것입니다.
이 글은 그 조건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그 방식은 비효율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많은 기업의 노하우가 문서가 아니라 사람 머릿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 회사는 지식 관리가 안 되어 있다"고 자책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지식을 사람 안에 두는 것은, 오랫동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문서로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듭니다. 정리한 문서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데는 더 큰 시간이 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회사에 있다면, 그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 물어보면 되니까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조건에서는 사람 머릿속이 가장 값싸고 정확한 저장소였습니다.
즉 지금 상황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합리적이었던 선택의 결과이고, 그 선택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던 전제가 바뀐 것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두 가지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는 워라밸에 대한 인식입니다. 회사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것인가보다, 내 시간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먼저 보는 흐름입니다. 이것을 충성심의 실종으로 해석하면 그 다음 논의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두 번째입니다. 경력 관리의 주체가 회사에서 개인으로 넘어갔습니다.
예전에는 회사 안에서 어떤 자리로 갈 것인지를 회사가 설계했습니다. 연구원에서 팀장으로, 실장으로, 소장으로 가는 경로가 있었고 그 경로는 회사가 관리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개인이 산업 전체를 놓고 자기 경로를 설계합니다. 이 회사에서 3년 동안 이 경험을 쌓고, 다음에는 저 분야로, 그 다음에는 이 역할로. 회사는 그 경로 위에 놓인 정거장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회사가 나를 30년 책임지지 않는데, 나만 30년을 걸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전제가 바뀐 것입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 전제 위에 세워져 있던 계산식을 다시 짜야 합니다.
계산식은 이렇게 뒤집혔습니다
전제가 바뀌니 결과가 반대로 나옵니다.
교육에 투자하면 그 사람의 시장 가치가 올라갑니다. 시장 가치가 올라가면 더 좋은 제안을 받습니다. 그러면 나갑니다. 잘 가르치는 회사일수록, 좋은 프로젝트를 맡기는 회사일수록 이 현상이 뚜렷합니다.
이 자리에서 자주 나오는 두 가지 대응이 있습니다. 둘 다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지만, 둘 다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 대응 | 논리 | 문제 |
|---|---|---|
| 교육을 줄이자 | 어차피 나갈 사람에게 왜 투자하느냐 | 배울 것이 없는 회사에는 머물 이유가 더 없음. 이탈을 앞당김 |
| 붙잡아 두자 | 처우, 스톡옵션, 의무 근속 조건 | 나가는 속도를 늦출 뿐 방향을 바꾸지 못함. 실무자만 아니라 소장도, CEO도 바뀜 |
주목할 것은 이 두 대응의 공통점입니다. 둘 다 목표가 "사람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더 이상 달성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 지금 문제의 본질입니다.
한쪽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가 자칫 "개인은 이미 바뀌었으니 기업이 따라가야 한다"로 읽힐 수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기업과 개인 사이에 문서화되지 않은 계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기업은 고용의 안정성과 회사 안에서의 경력 경로를 제공하고, 개인은 시간과 소속감을 제공합니다. 지식을 사람 안에 두는 방식도 이 계약 위에서 양쪽 모두에게 합리적이었습니다. 기업은 문서화 비용을 아꼈고, 개인은 자기 안에 쌓인 노하우가 곧 자기 자리의 보장이었습니다.
그 계약이 만료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은 이미 새 계약대로 움직이는데, 기업은 아직 옛 계약의 언어로 말합니다. 애사심, 주인의식, 키워줬는데. 이 어긋남이 지금 여러 회사에서 나타나는 통증의 실체라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잘 언급되지 않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개인 쪽도 아직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력을 스스로 관리하려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두루뭉실한 프로젝트 덩어리를 받아서 알아서 해내는 방식으로 일하면, 그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은 "OO 프로젝트 참여" 정도입니다. 그 안에서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대안을 검토했고, 어떤 근거로 방향을 정했는지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한 일의 대부분은, 회사에도 남지 않고 본인에게도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이 정의되고 판단이 기록되는 구조는, 회사에는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 자산이 되고 개인에게는 자기 경력의 증빙이 됩니다. 양쪽이 같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적응이 아니라, 기업이 직원을 어떻게 정의하고 직원이 회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합의입니다. 그리고 그 합의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일을 나누는 방식, 기록하는 방식, 평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실체가 생깁니다.
관리라는 말의 의미도 그래서 달라집니다. 예전의 관리는 사람을 오래 붙들어 두고 그 사람 안에 경험이 쌓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관리는 회사와 개인이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 정의된 단위로 일하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을 "관리한다는 것"으로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붙들고 있으면 방법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려 합니다.
그 사람이 나갈 때, 무엇이 함께 나가고 무엇이 남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갑자기 구체적인 목록이 나옵니다.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작성한 보고서와 실험 기록은 남습니다. 집행한 예산 내역도 남습니다. 결재 이력도 남습니다. 이미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것들은 함께 나갑니다.
- 그 프로젝트를 왜 시작했는지
- 검토했던 세 가지 방향 중 왜 이것을 골랐고, 나머지 둘은 왜 접었는지
- 계획을 세울 때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는지
- 2년 전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어디서 막혔는지
이것들이 없으면 후임자는 문서 더미를 받아 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어떤 자료가 중요한지 판단할 기준이 없어 전부 읽어야 하고, 전부 읽어도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전임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전임자가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 지점에서 멈춥니다.
회사는 그 사람이 나간 만큼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시행착오만큼 뒤로 갑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미 한 번 접었던 검토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것이 이미 검토된 적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조금 불편한 질문이 나옵니다.
기업이 구성원의 집합이라면, 5년 뒤 사람이 대부분 바뀐 그 회사는 같은 회사입니까. 구성 요소가 전부 교체되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같은 회사라고 부릅니다. 법인격이 유지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다 바뀌어도 남아 있는 그 무엇이, 실은 기업의 실체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이 시리즈는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아야 할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남게 되는가. 그리고 왜 지금 우리 회사의 시스템에는 그것이 남아 있지 않은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것은 사람을 덜 중요하게 보자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사람이 한 일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으면, 회사도 그것을 잃고 그 사람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남기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양쪽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미리 한 가지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아까 "남는 것" 목록에 있던 항목들 — 보고서, 예산 내역, 결재 이력 — 을 다시 보시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부 규정대로 처리되는 일이고, 그래서 이미 시스템에 들어가 있습니다. 반대로 함께 나가는 것들은 전부 판단에 속하는 일이고, 시스템 밖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전산화에 들인 자원의 대부분은 앞쪽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정작 사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뒤쪽입니다.
요즘은 AI를 붙이면 이 문제가 풀린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그 이야기도 시리즈 뒤쪽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다만 미리 한 줄만 말씀드리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AI가 찾아줄 수는 없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회계와 구매는 시스템에 다 들어와 있는데, 그럼 우리 회사의 판단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요.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문제의식의 상당 부분은 2022년 연구기획 담당자 대상 세미나에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AI 흐름을 보고 급히 만든 논의가 아니라, 몇 해에 걸쳐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해 온 문제라는 점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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