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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엔터프라이즈와 온톨로지 — 상태를 관리하는 것과 지식을 쌓는 것

이론과 현장 - 10

정보는 쌓이는데, 왜 판단에 쓰이지 않습니까

경쟁사의 신기술 소식이 들어왔다고 하겠습니다. 이 정보가 인텔리전스로 등록되면, 잘 갖춰진 시스템은 이 기술이 어떤 분류에 속하는지, 그 분류와 연결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그 프로젝트의 어떤 전제(前提)와 관련 있는지를 관계로 따라갑니다. 그 결과 "이 프로젝트의 이 전제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라는 정보가 담당자에게 전달되고, 담당자는 이를 보고 계획을 다시 볼지 판단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고서가 남고, 실험이 끝나면 데이터가 남지만, 새 정보가 들어와도 그 데이터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기억해서 찾아야만 판단에 쓰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시스템이 그 데이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데이터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어를 알아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이 프로젝트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 결정이 어떤 전제 위에서 내려졌는지를 데이터끼리 서로 연결해서 조합해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시스템이 상황을 사람처럼 인식하고, 사람이 판단할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온톨로지(Ontology)입니다. 용어를 맞추고, 분류 체계를 세우고, 산출물의 속성을 표준화하고, 데이터 사이의 관계까지 데이터로 남기는 일입니다.

상태 관리와 기업 차원의 지식 자산은 다른 문제입니다

기업 활동을 다루는 문제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상태 관리(狀態管理)입니다. 생물학의 알로스타시스(Allostasis)처럼, 전략과 프로젝트 계획을 고정된 것으로 두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계속 갱신하는 것입니다. 경쟁사 동향, 기술 변화 같은 인텔리전스가 들어오면, 시스템은 이 데이터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지식(知識)으로 이해하고, 전략·계획과 연결해 지금 상황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판단할 수 있도록 가능한 선택지(Option)를 제시합니다. 이게 곧 디지털엔터프라이즈(Digital Enterprise)이고, 다른 시리즈(DX·AIX 출발점)가 다뤄온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업 차원의 지식 자산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 차원의 Know-how로, 기업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 결과가 다시 기업의 지식이 되어 돌아오는 축적과 공유(共有)의 사이클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글이 다루는 온톨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지식 자산은 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위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고 사업 환경이 바뀌어도, 축적된 지식 위에서 판단할 수 있는 회사는 그 변화를 견뎌냅니다. 그리고 이 능력 자체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쌓인 지식이 다음 판단의 질을 높이고, 그 판단이 다시 더 나은 지식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계속 발전합니다.

둘이 함께 있어야, 외부 변화에 반응하면서도 그 판단이 다음 반응의 근거로 계속 발전해 가는 조직, 곧 완전한 디지털엔터프라이즈가 됩니다.

온톨로지는 무엇을 대상으로 합니까

온톨로지를 세우기 전에, 무엇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기업의 업무는 트랜잭션 업무와 프로젝트성 업무로 나뉩니다. 트랜잭션 업무 — 재무, 구매, 생산처럼 정해진 절차대로 돌아가는 업무 — 는 대부분 이미 시스템으로 구현되어 데이터베이스에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온톨로지를 적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알로스타시스로 관리되어야 할 프로젝트성 업무입니다. 이 업무의 핵심 — 의사결정, 검토 의견, 전제, 그리고 경쟁사·기술·시장 동향 같은 인텔리전스 — 은 지금 대부분 회의록, 메일, 개인 메모처럼 시스템 밖에 있습니다. 데이터가 없는데 분류 체계부터 세우면, 적용할 대상이 없는 빈 틀이 됩니다.

그래서 이 둘은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竝行)의 문제입니다. 프로젝트성 업무의 핵심 활동들을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과, 그 데이터를 용어·분류·속성으로 정리하는 일은 함께 진행됩니다. 이 부분은 다른 시리즈(DX·AIX 출발점)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여기서는 짧게 짚고 넘어갑니다. 온톨로지의 대상에는 트랜잭션 업무의 기록뿐 아니라, 프로젝트성 업무의 의사결정·검토·전제·인텔리전스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앞서 든 예시 — 경쟁사의 신기술 소식이 들어와 프로젝트의 전제와 연결되는 상황 — 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인텔리전스가 시스템 밖(개인 메모)에만 있었다면, 애초에 연결될 데이터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운영 중인 시스템에는 온톨로지 개념이 이미 담겨 있습니다

맨땅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ERP 같은 트랜잭션 업무 시스템은 '거래처', '품목'처럼 데이터를 테이블과 관계로 구조화해서 관리합니다. 이 구조 자체가 사실 온톨로지가 하려는 일, 곧 용어를 정리하고 관계를 맺는 작업을 이미 상당 부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데이터는 새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앞서 다룬 대로, 프로젝트성 업무의 정보(의사결정, 검토 의견, 전제)가 더해져야 진짜 자산이 됩니다. 있는 것은 가져다 쓰고, 없는 것부터 채우는 것이 순서입니다.

용어에서 속성까지 — 세 단계로 세웁니다

온톨로지를 세우는 일은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용어(用語)부터 맞춥니다. 같은 원료, 같은 거래처가 부서마다, 담당자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흔한 문제입니다. 용어 정리는 새 용어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내에서 쓰이는 용어에 대한 표준사전(標準辭典)을 만드는 일입니다.

둘째, 표준 분류 체계를 세웁니다. 모은 용어를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나눠 정리합니다. 예를 들어 '원료' 아래 '고분자'를, 그 아래 다시 세부 종류를 두는 식입니다.

이 체계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술이 늘면 분류가 새로 생기고, 너무 커진 분류는 나뉘고, 때로는 합쳐집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 원료가 어떤 기술인지'와 '이 원료를 어디에 쓰는지'처럼 서로 다른 정보를 한 분류 안에 섞어 넣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섞어두면, 나중에 분류가 바뀔 때 상관없는 정보까지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각 분류에는 분류명, 상위 분류, 버전처럼 그 분류 자체를 설명하는 정보(메타데이터)도 함께 정리해 둡니다.

셋째, 클래스와 엔티티의 속성을 표준화합니다. 분류(클래스)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메타데이터라면, 이 단계는 그 분류에 속하는 개별 산출물(엔티티)이 어떤 속성을 갖는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가 온톨로지를 구축하는 일반적인 절차의 핵심 흐름입니다. 실제 설계는 더 세부적인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전체 흐름만 짚었습니다. 이 세 단계가 갖춰져야 비로소 산출물을 검색하고 비교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됩니다.

관계가 쌓이면 시스템은 의사결정지원 기능을 갖습니다

여기까지는 산출물 하나하나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상황을 인식하려면, 산출물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도 데이터로 남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이번 검토 의견은 지난달 세운 전제를 반박한다." "이 인텔리전스는 지금 진행 중인 계획의 이 가정과 관련 있다." 이런 관계(關係)가 문장이 아니라 데이터로 남아 있어야, 시스템이 그것을 조합해서 "지금 이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 있다"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관계가 쌓이면, 시스템은 단순한 기록 보관소를 넘어 의사결정지원(意思決定支援) 기능을 갖게 됩니다. 새 정보가 들어왔을 때, 그 정보가 어느 프로젝트의 어느 전제와 관련 있는지를 시스템이 먼저 짚어주고, 사람은 그 위에서 판단합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든 예시가 바로 이것입니다.

관계가 데이터로 없으면, 아무리 용어와 분류가 잘 갖춰져 있어도 시스템은 산출물을 낱개로만 볼 뿐, 그 사이의 이야기를 읽지 못하고, 의사결정지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 부서가 함께 쓰는 체계이니, 임의로 고칠 수 있으면 금방 다시 흩어집니다. 별도의 마스터 관리자(Master Data Steward)를 두고, 변경은 그 관리자를 거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리 — 디지털엔터프라이즈는 상태 관리, 온톨로지는 지식 자산

디지털엔터프라이즈가 인텔리전스에 맞춰 전략과 계획을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라면, 온톨로지는 시스템이 흩어진 정보 사이의 맥락(脈絡)을 이해하게 만들어, 그 위에서 지식이 기업 차원의 자산으로 축적되고 공유되게 하는 것입니다.

용어를 맞추고, 분류와 메타데이터를 세우고, 속성을 표준화하고, 관계까지 데이터로 남겨야, 시스템이 상황을 인식하고 의사결정지원 기능을 갖습니다. 상태 관리만 있으면 매번 새로 시작하고, 지식 자산만 있으면 상황 변화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둘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AI가 쓸모 있게 작동하는 기업이 됩니다.

저희는 25년 동안 제약·바이오·화장품·화학·건설·제조 분야에서 R&D 관리 체계를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관리할 항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관리해야 하는지부터 함께 정리합니다. 이야기 나눌 자리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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