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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디에 남았습니까 — 팀제, 6시그마, BPR, OKR

이론과 현장 • 경영유행 - 2

회사에 남아 있는 흔적들

명함에는 팀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팀은 예전에 부서였습니다.
인사 기록에는 벨트 자격이 남아 있습니다. 평가 양식에는 KPI 칸이 있습니다. 파일 서버에는 팀 이름으로 된 폴더가 줄지어 있습니다.
전부 한때 전사적으로 도입했던 방법론의 흔적입니다. 방법론은 사라졌는데 흔적은 남았습니다.

앞 편에서 본 것

앞 편에서는 경영 방법론이 유행처럼 왔다 가는 구조를 봤습니다.

유행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학계와 컨설팅 업계와 언론과 최고경영진의 이해가 맞물려 확산됩니다. 그리고 도입하는 쪽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실적보다 제도적 정당성, 곧 합리적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신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순서였습니다. 우리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What)와 왜 그것을 풀어야 하는지(Why)가 먼저여야 하는데, 좋아 보이는 방법(How)이 먼저 정해지고 적용할 곳을 나중에 찾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결과를 봅니다.

다섯 가지가 지나간 자리

방법론 도입 목적 확산 이후 남은 것
팀제 의사결정 계층 축소 전 부서 일괄 적용 명칭
6시그마 공정 산포 감소 전사 벨트 양성과 과제 할당 자격과 실적
BSC 재무 편중 보완 지표 체계만 이식 왜곡된 KPI
EDMS 문서 통합 관리 분류·권한 없이 서버 구축 팀별 디렉터리
BPR 업무 재설계 패키지 도입의 사전 단계로 패키지에 맞춘 절차

하나씩 보겠습니다.

팀제 — 계층을 줄이려던 것

도입 목적은 의사결정 속도였습니다. 부와 과로 이어지는 계층이 길어 결재가 느렸습니다. 단계를 줄이고, 일 단위로 인원을 유연하게 묶자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조직에는 맞았습니다. 영업, 개발, 신사업처럼 일이 생길 때마다 구성이 달라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전사에 일괄 적용됐습니다. 인사, 총무, 경리처럼 업무가 기능별로 고정되어 있고 계층이 짧아도 되는 조직까지 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조직들은 원래 하던 대로 일했습니다. 바뀐 것은 부장이 팀장이 되고 과가 파트가 된 것뿐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명칭은 남아 있습니다.

6시그마 — 공정의 산포를 줄이려던 것

도입 목적은 품질 변동의 감소였습니다. 같은 공정을 반복하는데 결과가 들쭉날쭉한 문제를 통계로 줄이자는 것입니다.

같은 공정을 반복하고 결과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곳에서는 효과가 분명했습니다. 생산과 품질 영역입니다.

그런데 전사 운동이 되면서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벨트 자격자를 몇 명 양성할지, 과제를 몇 건 수행할지가 관리 지표가 됐습니다.

그러자 과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제가 생겼습니다. 측정할 데이터가 없는 부서에서도 과제를 올려야 했고, 통계 기법을 쓰기 어려운 업무에 억지로 틀을 맞췄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품질 인증도 함께 확산됐습니다. 다만 인증은 고객이나 규제가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유행과 요구가 섞여 있습니다.

BSC — 재무 편중을 보완하려던 것

도입 목적은 측정 관점의 확장이었습니다.

주주는 경영진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직접 볼 수 없어 재무 숫자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면 단기 성과로 쏠립니다. 재무 외에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이라는 관점을 함께 보자는 것이 BSC였습니다.

그런데 들어온 것은 지표 체계였습니다. 왜 재무만으로 부족한지에 대한 논의는 함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 관점은 흐려지고 KPI라는 말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원래 취지와 무관하게 쓰입니다. 성과를 수치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수치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지원 부서까지 KPI를 만들어야 합니다.

측정 관점을 넓히려던 방법론이, 측정 항목을 늘리는 도구가 됐습니다.

EDMS — 기술은 우수했는데

도입 목적은 문서의 통합 관리였습니다. 개인 PC와 부서 서버에 흩어진 문서를 한곳에서 찾고, 버전을 관리하고, 권한에 따라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제품도 우수했습니다. 검색, 버전 관리, 결재 연동, 보안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반이 없었습니다. 문서를 어떤 기준으로 분류할지, 누가 무엇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문서를 언제까지 보관할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 서버부터 들어왔습니다.

분류 체계가 없으니 각 팀이 자기 폴더를 만들어 썼습니다. 권한 정책이 없으니 열어두거나 잠갔습니다. 남은 것은 팀별 디렉터리입니다. 부서 서버가 한 곳으로 옮겨졌을 뿐입니다.

BPR — 목적이 뒤집힌 경우

앞의 넷과 성격이 다른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BPR(업무 재설계)의 도입 목적은 이 시리즈가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기존 절차를 당연하게 두지 말고, 우리 일이 무엇인지 백지에서 다시 정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대부분 ERP 도입의 사전 단계로 쓰였습니다.

패키지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에 회사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것을 재설계라고 불렀습니다. 흔히 말하는 표준 프로세스 적용입니다.

우리 일을 다시 정의하자는 방법론이, 남의 구조에 우리를 맞추는 작업으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다른 사례와 다릅니다. BPR이라는 말은 지금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든 절차와 화면은 남아서 지금도 돌아갑니다. 이름은 사라졌는데 결과물이 회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 갈래로 갈립니다

다섯 사례를 놓고 보면 어긋난 지점이 갈립니다.

갈래 사례 묻지 않은 것
범위를 넘어섰다 팀제, 6시그마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
전제를 건너뛰었다 BSC, EDMS 무엇이 먼저 있어야 하는가
목적이 뒤집혔다 BPR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

셋 다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우리 회사가 무슨 일을 어떤 역할로 하고 있는지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정리되어 있으면 범위를 판단할 수 있고,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있고, 목적이 뒤집혔을 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만 바꿔 돌아옵니다

지금 유행하는 것은 OKR입니다.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를 정하고, 전사에서 팀과 개인으로 전개하고, 분기마다 점검합니다.

그런데 40년 전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국내에 들어온 방침관리입니다. 상위 방침을 하위로 전개하고, 조율하고,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계보는 다릅니다. OKR은 드러커의 목표관리(MBO)에서 인텔을 거쳐 나왔고, 방침관리는 일본 품질경영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푸는 문제가 같습니다. 위에서 정한 방향을 아래까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연결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40년 전에도 했고 지금도 합니다. 이름이 바뀌어 다시 유행한다는 것은, 그때 풀리지 않은 문제가 지금도 안 풀렸다는 뜻입니다.

다음 편에서 볼 것

지금까지는 방법론이었습니다. 방법론은 유행이 지나가면 사라지고 흔적만 남습니다.

제품은 다릅니다. 사라지지 않고 계속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위에 회사의 업무가 얹혀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RP와 세일즈포스와 팔란티어. 제품은 왜 만들어졌고, 우리는 왜 사 오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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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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