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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Insight실험실에서도 회의실에서도, 같은 다섯 칸이 비어 있습니다
전자경영노트 48 / 102

실험실에서도 회의실에서도, 같은 다섯 칸이 비어 있습니다

전자경영노트 - 3편

의사결정이라고 하면 회의실이 떠오릅니다

임원들이 모여 앉고, 자료가 넘어가고, 무엇을 할지 정합니다. 연간 몇 번쯤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실험실에서도 결정이 있었습니다. 3회차 결과를 보고 다음에 무엇을 바꿀지 정했습니다. 참석자는 둘이었고, 회의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둘 다 의사결정입니다. 크기가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둘 다 같은 방식으로 사라집니다. 결론은 어딘가에 남는데, 그 결론을 만든 것이 남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가 실제 업무에서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보겠습니다. 내용은 예시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시작합니다

지난 글에서 의사결정 기록 한 건에 붙어야 할 것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전제 · 선택지 · 기각 사유 · 근거 · 검토의견.

이 다섯 칸이 실제로 어떻게 채워지는지, 두 개의 레이어와 하나의 차원으로 나눠서 보겠습니다.

전략 레이어 — 후보 열둘에서 셋으로

2023년 12월, 이듬해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를 확정하는 자리입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후보가 열두 건, 확보된 예산으로는 서너 건이 한계입니다.

세 건을 선정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회사나 같습니다. 보통 최종보고서에 남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 아홉 건이 문제입니다.

이 아홉 건을 한 덩어리로 "미선정"이라고 적으면 내년에 다시 열두 건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접는 이유를 나눠서 남깁니다.

부결 6건
시장성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우리 기술로 감당할 범위를 넘습니다. 다시 올라올 이유가 없습니다.

보류 3건
사업성은 인정되는데 지금은 조건이 안 맞습니다. 그중 하나는 원료 공급사가 한 곳뿐이라 미뤘습니다. 접은 이유가 아니라 미룬 이유이고, 그 조건이 풀리면 돌아와야 합니다.

보류와 부결을 구분하지 않으면, 조건이 풀려도 아무도 그 과제를 다시 꺼내지 않습니다.

전제 조건 — 선정된 3건

전제해당 제품군의 인허가 요건이 현행 수준으로 유지된다
의미이 조건이 흔들리면 이 결정을 다시 봐야 한다는 뜻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조건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지난 글에서 본 대로, 당연한 것은 말해지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것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어서 적었습니다.

그리고 검토의견이 붙습니다. 연구소는 기술 확보 수준을, 생산은 설비 대응을, 구매는 원료 수급을, 마케팅은 시장 진입 시점을 봤습니다. 각자 무엇을 우려했고 무엇을 확인했는지가 남습니다.

실행 레이어 — 회차 사이의 결정

같은 결정이 훨씬 작은 크기로 매주 일어납니다.

선정된 과제 중 하나가 서방형 제제 개발입니다. 8월, 함량과 용출 조건을 잡는 실험이 3회차까지 진행됐습니다.

3회차 결과가 나왔습니다. 용출 프로파일이 목표 구간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결정이 필요합니다. 다음 회차에 무엇을 바꿀 것인가.

세 가지를 놓고 봤습니다. 고분자 비율을 조정할 것인가, 타정압을 낮출 것인가, 아니면 기재 자체를 바꿀 것인가.

고분자 비율 조정으로 갔습니다. 나머지 둘은 검토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기각 사유

타정압 조정이미 하한에 가까웠음
기재 변경앞선 회차 데이터를 전부 버리게 됨

전제 조건 — 4회차 방향 결정

전제현 고분자 로트의 점도 편차가 규격 내에서 유지된다
의미다음 입고 로트의 점도가 규격 상한에 붙으면 이 회차들을 다시 봐야 함

분석팀 검토의견도 남았습니다. 용출 시험 조건 자체는 문제없음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의견이지만, 이것도 기록입니다. 나중에 "그때 분석 조건은 확인했나"라는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여기서 두 노트가 맞물립니다. 3회차의 조건과 결과는 전자연구노트에 남습니다. 그 결과를 어떻게 읽고 4회차를 정했는지는 지금 아무 데도 남지 않습니다. 담당 연구원의 머릿속과, 잘하면 개인 노트에 한 줄 있습니다.

기술분류 차원 — 레이어를 세로로 관통합니다

세 번째는 레이어가 아닙니다.

전략 레이어와 실행 레이어는 가로로 쌓입니다. 기술은 그 둘을 세로로 관통합니다. 회의실에서 내린 결정도, 실험실에서 내린 결정도 같은 기술 이름 아래 모입니다.

이 세로축이 사내 표준 기술분류 차원(Dimension)입니다. 회사가 다루는 기술을 정의해 둔 체계이고, 결정과 산출물이 여기에 걸립니다.

폴더를 나누는 분류체계와는 다릅니다. 자료를 넣어두는 칸이 아니라, 결정이 걸리는 자리입니다.

앞의 실험이 매달려 있는 기술은 고분자 매트릭스 서방화입니다. 이 기술 이름으로 회사가 아는 것을 전부 꺼내면 이런 화면이 됩니다.

구분 모여 있는 것
과제2021년 완료 과제 1건 · 진행 중 1건
의사결정 기록함량·용출 관련 판단 19건 (회차 계보 포함)
산출물처방 검토 보고서 7건 · 조건 설정 근거 자료
조사 자료특허 동향 조사(2023) · 경쟁 제품 방출 프로파일 분석
참여 연구원이 기술의 판단에 참여한 이력 보유자 4인
외부기관용출시험 위탁 실적 2개 기관 · 기각 이력 1개 기관(사유 포함)

이 화면을 만들기 위해 누가 따로 정리한 것이 없습니다. 과제를 등록하면서 기술을 골랐고, 실험 판단을 기록했고, 조사 보고서를 올렸고, 기관을 선정했습니다. 각자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 같은 기술 이름이 붙어 있으니 한 자리에 모입니다.

마지막 줄을 봐 주십시오. 외부기관 기각 이력입니다.

3년 전에 어느 기관에 용출시험을 맡겼다가 일정 대응과 재현성 문제로 다시 안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 사유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다시 위탁처를 찾을 때, 담당자의 인맥이 아니라 회사의 이력에서 답이 나옵니다.

그리고 2021년 과제는 3년 전에 끝났습니다. 그 과제의 판단 열두 건은 지금도 이 자리에 살아 있고, 이번 과제에서 다시 쓰였습니다.

레이어는 시간이 지나면 닫힙니다. 전략은 확정되고 과제는 완료됩니다. 차원은 닫히지 않습니다. 회사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이 여기 모입니다.

겹쳐 보면

전략 레이어 실행 레이어 기술분류 차원
무엇을 정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에 무엇을 바꿀 것인가 (결정이 모이는 자리)
주기 연 1~2회 주 단위 계속
참여 부서 여럿 한둘
닫히는가 확정되면 닫힘 과제 종료 시 닫힘 닫히지 않음
다시 열리는 때 규제·시장 변화 다음 회차 신규 과제 검토

주기도 참여자도 크기도 다릅니다. 그런데 남겨야 할 다섯 칸은 같습니다.

전략 결정에만 전제가 붙는 것이 아닙니다. 실험 회차에도 붙습니다. 임원 회의에만 검토의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석팀의 한 줄도 검토의견입니다.

형태가 같기 때문에 하나의 노트로 담깁니다. 그리고 하나의 노트에 담기기 때문에, 실험실의 판단이 전략 재검토에서 조회되고 3년 전 과제의 결정이 올해 과제에서 쓰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여기까지가 쌓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쌓기만 하면 그것도 창고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기록이 언제 되살아나는지를 보겠습니다. 규제가 개정 논의에 들어갔을 때, 원료 로트의 점도가 상한에 붙었을 때, 보류했던 과제의 조건이 풀렸을 때. 바깥이 바뀌었을 때 무엇을 다시 봐야 하는지가 어떻게 나오는가입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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